투모로 창고
투모로소식

TOMOLAW IS CREATION " 투모로는 창조입니다."

소송

제목 : [판결] 대법 "시효 지난 뒤 일부 갚았다고 시효이익 포기 추정 못 해"
작성자 : 서선진 작성일자 : 2025-07-25
첨부파일 : 없음

대법원, 58년 만에 판례 변경…채무자 보호·개별 판단 강조

[전원합의체 판결]
소멸시효가 완성된 뒤 채무자가 일부라도 갚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유지돼 온 '시효이익 포기 추정' 법리를 폐기하고,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도 그 이익을 포기했는지는 사건별로 구체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기준을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7월 24일 소멸시효 완성 후 채무 일부를 변제한 것이 시효이익 포기인지 문제된 A 씨의 배당이의 소(2023다240299)에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한 종전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고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실관계]
채무자인 A 씨는 B 씨에게 네 차례에 걸쳐 총 2억4000만 원을 빌렸다. 이후 1·2차 차용금의 이자채무는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돼 더 이상 갚을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A 씨는 B 씨에게 1800만 원을 일부 변제했다. 이후 A 씨 소유의 부동산이 경매에 넘어가자, B 씨는 근저당권자로서 약 4억 6000만 원을 배당받았다. 이에 A 씨는 "B 씨가 실제 채권액보다 과다하게 배당받았다"며 배당표를 정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판단]
소멸시효는 항소심에 이르러서야 쟁점이 됐다. 항소심은 A 씨의 주장을 일부만 인정했다. 항소심은 "A 씨 1·2 차용금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차용금을 일부 변제함으로써 1·2차 차용금 이자채무에 관한 소멸시효 완성의 이익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A 씨가 채무를 일부 변제했다는 사실만으로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판단하고 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은 것이다. 이에 A 씨가 불복해 상고했다.

[쟁점]
기존 대법원 판례(1966다2173 판결 등)는 "시효완성 뒤 채무자가 채무를 승인하면,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봤다. 즉 채무를 일부라도 갚았다면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고 추정했다. 이 사건에서는 이 법리를 유지할지가 쟁점이 됐다.

[전원합의체 판단]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같은 종전 법리를 58년 만에 변경했다. 다수의견은 기존 추정 법리가 부당하다고 지적하며, 시효완성 뒤 일부 변제했다고 해서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 의사표시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전합은 "추정 법리는 경험칙으로 뒷받침되지 않거나 오히려 경험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시효완성 후 채무자가 채무를 승인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시효완성에 관한 채무자의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의사표시를 추정하는 것은 합리적 경험칙에 기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합은 이어 "단지 소멸시효 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기 어렵고,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는지 여부는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또 "채무자가 시효완성으로 채무에서 해방되는 이익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경험칙에 비추어 보면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엄격히 구별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승인은 단순히 채무가 존재한다는 인식을 표시하는 것이지만, 시효이익 포기는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법적 이익을 스스로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두 개념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합은 "추정 법리는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의 근본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채무승인 행위가 있으면 곧바로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가 있다고 추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으므로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권리 또는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는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행위만을 근거로 채무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손쉽게 추정하고 있어, 권리나 이익 포기에 관한 해석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의 일반적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합은 "추정 법리는 채무자를 부당하게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한다"고 지적하면서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일정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경우 그 권리를 소멸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제도로, 이를 통해 채무자는 채무에서 벗어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되는데,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사정만으로 시효완성 사실에 대한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추정하고, 채무자로 하여금 그 추정을 번복하게 할 부담을 부과해 채무자를 본래 법이 예정하지 않았던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한다"고 설시했다.

[별개 의견]

노태악·오석준·엄상필·이숙연·마용주 대법관은 다수의견과 달리 종전의 추정 법리를 유지해야 한다며 별개의견을 냈다. 이들은 "원심판결 중 제1, 2차용금 이자채무에 관한 판단 부분에는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한다"고 밝혔지만, 판례 변경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 대법관은 "추정 법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심이 법리를 잘못 해석·적용한 것이므로 추정 법리에 관한 판례 변경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다수의견이 내세운 시효이익 포기 의사표시에 관한 구체적 판단기준과 종전 판례의 의사해석 판단기준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봤다.


이들 대법관은 "추정 법리의 근거인 경험칙이 처음부터 명백히 잘못됐다거나 사회일반의 상식에 반하는 것이 됐다고 볼 만한 자료는 없다"며 "오히려 추정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타당성을 인정하고 적용해온 것으로서 여전히 법리적·실무적으로 타당하므로 유지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추정 법리는 사실상 추정에 불과하므로 반증으로 추정이 번복될 수 있다"며 "대법원은 그동안 추정 법리를 유지하면서도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를 구별해왔고,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가 존재하는지에 관한 의사해석을 통해 구체적인 사건에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추정 법리가 채무자를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한다거나 부당한 결과를 야기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으며, 종전 판례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일반인의 상식과 경험칙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려웠던 획일적인 추정 법리를 폐기하고, 원칙으로 돌아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도 그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했는 여부를 구체적으로 판단하도록 함으로써,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치우쳤던 심리 구조를 공평하게 바로잡고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2025. 7. 24.자 법률신문 내용>